14일 김태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이온포획 방식의 큐비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큐비트(qubit) 1000개를 만드냐 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양자 인재를 꾸준히 육성하고 양자 분야의 새로운 발견 등 현재 예상하지 못하는 지식이나 모멘텀을 찾아내 기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태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2032년까지 1000큐비트 양자컴 구현' 목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래에 양자 산업이 커지면 산업 내에서 분업이 이뤄질 텐데 양자 분야 연구개발(R&D)을 꾸준히 해본 인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경쟁력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전도 회로 방식 양자컴퓨터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IBM은 이미 2023년에 1121큐비트 양자컴퓨터 칩 '콘도르'를 공개한 바 있다. 정부 계획대로 2032년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더라도 큐비트 규모로는 약 10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큐비트는 여러 물리적 상태가 중첩된 '양자 중첩' 상태를 활용한 양자컴퓨터의 정보 처리 단위다.
김 교수는 "당연히 다른 회사들도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10년 동안 따라잡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양자 관련 연구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며 "방법을 다르게 하면 (발전 속도의) 기울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온포획 방식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IONQ) 공동창업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SKT 양자기술 연구조직을 거쳐 현재 서울대에서 이온포획 양자컴퓨터와 이온을 활용해 양자 상태를 전송하는 양자통신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 내 양자 연구자들 사이의 협력을 이끄는 서울대 양자연구단장도 맡고 있다.
김태현 교수팀에서 개발 중인 칩 형태의 이온포획 방식 큐비트. 전기장으로 칩 위에 이터븀(Yb) 이온을 띄우고 고정해 큐비트로 사용한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기에 대해서는 기대하는 수준과 분야에 따라 다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15~30년 걸린다고 이야기한 것은 암호 해독 등에 쓰이는 소인수분해 문제를 푸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라며 "이는 양자 오류가 거의 없도록 보정된 큐비트가 몇천 개 구현돼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원자나 분자 사이의 결합에너지를 최적화해 신소재·신약 후보를 찾아내는 '양자화학' 분야에서는 수십 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도 유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큐비트 오류가 어느정도 허용되는 화학 분야 양자컴퓨터 활용은 5년 안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아주 희망적으로 본다면 소인수분해 문제도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정부가 발표한 2032년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구현 목표가 실효성 있다고 보는지.
"큐비트 1000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양자 분야에) 들어가 배워야 지금 시점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을 통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로드맵이라는 건 대외적으로 발표를 해야 하니까 숫자를 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한국은 기술 분야에서 다른 나라보다 늦게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양자 산업이 커지면 산업 내에서 많은 분업이 이뤄질 것이다. 결국 모두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공급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이때 양자 분야를 해본 인력이 있냐 없냐가 완전히 다르다."
Q. 물리적 큐비트 구현 이후의 설비와 큐비트 계산을 활용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단계도 중요할 것 같다.
"큐비트 구현과 측정 이후 단계는 현존 컴퓨터 기술과 거의 똑같기 때문에 거기서 차별화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양자 알고리즘은 매우 중요하지만 양자컴퓨터를 활용했을 때 '양자 이득'이 있는지 없는지 잘 따져야 한다.
단순 이미지 분류 등 양자적인 성질이 전혀 없는 문제를 가지고 양자컴퓨터로 푸는 등 큐비트의 특성과 제약 조건을 이해하지 못한 알고리즘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또 과학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메커니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양자 알고리즘 연구결과는 주의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가 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제는 양자역학에서 물리현상 자체를 규명하는 문제들이다. 알고리즘이 (큐비트) 하드웨어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최적화해서 쥐어짜도록 해야 한다."
Q. 물리적 큐비트 구현 방식에 정답은 없다고 하는데.
"현재 연구 중인 이온포획 방식 분야에서는 큐비트 개수보다는 오류율이 낮은 큐비트를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오류 정정 단계까지 가려면 일단 큐비트 하나하나의 안정성이 최소한으로 확보돼야 한다.
전자공학의 발전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사용하는 소자는 예전과 달라졌지만 처음의 소자 설계가 재적용, 재활용됐다. 양자컴퓨터도 10년 후 초전도, 이온포획, 중성원자 등 어떤 물리적 큐비트가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기술이 호환될 것이다. 지금 생각하는 양자컴퓨터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Q. 학생들은 양자컴퓨터나 양자 산업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등 양자정보 관련 기초 수업을 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에서 양자 쪽 키워드를 얘기하다 보니 학생들도 관심이 있는 편이다. 다른 학교들도 양자 분야 채용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글
이전글
